그러진 않을 겁니다.
글이 라는 형식 안에서 인터렉티브를 만날 수 없는 것 처럼
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인터렉티브를 만나봤자 그건 더 이상 영화라는 형식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형식으로 바뀌는게 되버릴 테니까요
(파렌하이트는 하나도 새로울 게 없습니다. 그 전부터 아니 몇 십년전 부터 비쥬얼 노벨이라는 게임장르로 그러한 장르가 존재해 왔는데 파렌하이트는 그걸 자기가 필름이라고 부른걸 빼고는 여타 비쥬얼노벨 게임하고 다를 게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형식 속에서 만남 보다는 글이 인터넷을 만났듯,
영화도 언젠가 hd카메라 가격이 지금의 디카 값으로 떨어지면 지금 디카 찍듯이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주위 사람들하고 촬영하고 프리미어로 편집한 다음에 ucc같은 곳에 올리겠죠. 자본영화에서 대중영화로 넘어가는 시대 이런게 오히려 디지털 적인 영화의 만남이 아닐까요?
당연히 그럴겁니다. 백미러 관점이 강하다고는 하나, 매체의 힘은 일상의 소소한 영역까지 변화시키는데에서 발견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새의 아이들이 피시방에 모여 게임을 즐기는 건 '통탄'할 일이 아니라 일종의 대변혁의 징후로 생각해야하겠지요. 새로운 미학(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 이후 미학의 가능성을 순수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반동적 흐름으로 폄하하는 듯 싶습니다만), 새로운 정치학은 바로 이 변혁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해야만 유의미할 것이구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지난 번 독자들의 평론가/다운로드 비판은 백미러 관점의 정점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이 글이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박/상호작용이라는 인상이 드는 것이 저 뿐일런지 모르겠습니다.
비쥬얼 노벨이라는 게임 장르는 플롯이 바뀌는게 아닙니다.
게이머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는건, 어떤 케릭터의 플롯을 보게 되느냐일 뿐이지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플롯만을 보게 되어있습니다.
옛날 야루도라 라는 장르의 실험적 게임이 있었는데, 이 역시 게이머의 선택에 의해 바뀌는건 아주 사소한 부분이고 이미 정해진 15개의 엔딩중 어느 엔딩을 보게 되느냐만 달라집니다. 플롯도 거의 동일하져.
파렌 하이트같은 게임은 제가 알기론 지금껏 별로 시도 되지 않은 게임인건 맞을겁니다.
글이 라는 형식 안에서 인터렉티브를 만날 수 없는 것 처럼
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인터렉티브를 만나봤자 그건 더 이상 영화라는 형식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형식으로 바뀌는게 되버릴 테니까요
(파렌하이트는 하나도 새로울 게 없습니다. 그 전부터 아니 몇 십년전 부터 비쥬얼 노벨이라는 게임장르로 그러한 장르가 존재해 왔는데 파렌하이트는 그걸 자기가 필름이라고 부른걸 빼고는 여타 비쥬얼노벨 게임하고 다를 게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형식 속에서 만남 보다는 글이 인터넷을 만났듯,
영화도 언젠가 hd카메라 가격이 지금의 디카 값으로 떨어지면 지금 디카 찍듯이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주위 사람들하고 촬영하고 프리미어로 편집한 다음에 ucc같은 곳에 올리겠죠. 자본영화에서 대중영화로 넘어가는 시대 이런게 오히려 디지털 적인 영화의 만남이 아닐까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지난 번 독자들의 평론가/다운로드 비판은 백미러 관점의 정점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이 글이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박/상호작용이라는 인상이 드는 것이 저 뿐일런지 모르겠습니다.
게이머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는건, 어떤 케릭터의 플롯을 보게 되느냐일 뿐이지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플롯만을 보게 되어있습니다.
옛날 야루도라 라는 장르의 실험적 게임이 있었는데, 이 역시 게이머의 선택에 의해 바뀌는건 아주 사소한 부분이고 이미 정해진 15개의 엔딩중 어느 엔딩을 보게 되느냐만 달라집니다. 플롯도 거의 동일하져.
파렌 하이트같은 게임은 제가 알기론 지금껏 별로 시도 되지 않은 게임인건 맞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