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한준희 감독은 독립영화워크숍의 지옥같은 공동작업의 입문과정에 참여하여 자기 역할을 책임지며 성실하게 수료하였습니다.
<모가디슈>의 류승완 감독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독립영화워크숍을 입문하여 3개월 동안 4차 16mm 필름작업까지 완주하였습니다.
이후 본인의 영화적 적성을 확인하고 서울지역의 4년제 대학 영화과에 진학하였다가 1년 만에 자퇴하고 영화산업 현장의 막내 스탭으로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단편영화를 제작 연출하며 끊임없이 장편 시나리오에 응모하여 수많은 낙선과 좌절을 겪으면서 도전에 재 도전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물안 개구리로 안주하지 않기 위하여 같은 세대의 영화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여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그 노력의 결과가 <DP>인 것 같습니다.
작년에 김포국제청소년영화제의 주최로 <청소년 영화인에서 DP 감독이 되기까지>의 한준희 감독의 특강 http://naver.me/SKdcCG6A 으로 참여한
현재 독립영화워크숍 참여 회원들의 강의 평가 중에서 일부를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https://cafe.naver.com/inde1990 의 201기 강의 실습평가 게시판에서
1. 오늘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주세요.
한준희 감독 특강
특강의 전체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활인, 직업인으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였던 것 같다.
시작에 앞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한 차례 지나간 뒤, 한준희 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사실 ‘재능’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주 덤덤한 말투였다.
누구나 처음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마도 그건 ‘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를 거치면서 분명 이러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 돌아봐야 할 시기가 올 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는 영원히 예술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 짊어져야 할 삶이 있는 우리 모두가 순교자가 될 수는 없다. 상업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아마도 제도와 산업 안에서 드디어 마땅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 나는 여전히 예술로서의 영화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내게 아주 오래 전부터 두렵게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직업’‘예술’인 혹은 ‘예술’‘노동’자. 이런 단어들을 접할 때면 나는 항상 마음이 복잡해진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또 없을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이 모순 속에 내 살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이런 단어들을 내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외로 한준희 감독은 강의 내내 독립영화워크숍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워크숍 과정을 거치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갈 어떤 태도를 배웠다고 말한다. 영화라는 것은 결국 ‘함께’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 나 또한 이러한 워크숍의 정신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직접 겪어보니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좋은 취지라는 것은 알지만, 정말이지 꽁꽁 묶인 듯이 답답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표현을 해내기에는 설득하고, 회유해야 할 워크숍 회원 친구들이 참으로 만만치가 않다. ‘직업’이라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 전체의 일부가 되어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마땅한 보수를 받는 일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는 중이다.
앞서 한준희 감독이 말한 ‘재능’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 어쩐지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얼핏 알 것 같기도 하다. 산업 안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직업’을 가진다는 것. 또 그것은 전체 안에서 일부가 된다는 것. “우리 지금 죽자살자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재능’ 타령이니?” 대충 이런 꾸짖음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도중, 여기서 문득 한 가지가 또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에 빠졌던 ‘그 영화’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빛나는 재능으로, 빛나는 영화를 만들던 그 양반들은 대체 뭘까? 아마 이 질문은 내가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며 계속해서 거듭해야 할 물음인 것 같다.
나는 한준희 감독에게 묻고 싶은 질문으로 이것을 적었다. ‘두번째 작 <뺑반> 이후의 삶은 어떠했는지?’ 사실 나는 이 질문이 그를 곤란하게 만들까 조금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의연한 태도로 답변을 해주었다.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그래도 일이 하나 끝났으니 다시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해야 했다고.” 그렇게 그는 워드 창에 또 한 번 S#1을 적었다고 한다. 한 ‘직업인’에게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밖에도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좌절은 어쩔 수 없이 그냥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말. 또 직장인이 아침에 회사 가기 싫은 것처럼 자신도 아침에 촬영 현장에 가기 싫다는 말 등. 곱O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참 많이 들었다. 예전에 어느 베테랑 감독이 촬영 현장이 너무 두려워 출근 도중에 구토를 하면서 끝내 도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영화라는 일이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았던 직장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멋대로 한 가지 희망만은 계속해서 품으리라 마음 먹는다. 출근과 근무 그리고 퇴근.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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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작업' .. 이 단어는 독협을 알게 된 첫날부터 수료하는 지금까지 지겹도록 듣고 함께해 온 단어이다. 다른 영화 교육기관들과 차이점이자 O 선생님께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점이다. 공동작업이라는 이유로 독립영화워크숍을 선택한 참여회원들도 많고 독협의 가장 큰 성격이 되었다. 독립영화워크숍은 공동작업으로 진행되는 워크숍이라는 걸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영화가 다 공동작업 아닌가? 왜 이렇게 공동작업을 강조하지?". 1차 실습작품을 끝낸 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공동작업은 정말 공동작업이라는 말이었구나". 한 명의 연출과 여러 명의 스태프가 아닌, 공동연출과 공동촬영으로 진행되는 작업 방식이 공동작업이었다. 공동작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걸 좋아해! 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가 큰코다쳤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하나의 작품에 묶이게 되었고, 정말 힘들고 어려운 작업임을 1차 실습이 끝날 즈음에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영화광(光)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며 관련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를 배우고 싶어 인터넷을 뒤적이며 독립영화워크숍을 찾아냈다. 그렇게 처음 설명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독협의 열악한 환경과 O선생님의 설명에 마음이 끌려 등록하게 되었다. 3개월 동안 오직 독립영화워크숍에만 매진했고 영화에만 집중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꿈에 영화 촬영을 하고 있는 본인이 등장했고 어딜 가도 장소들이 로케이션 후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영화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공동작업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공동작업이 무엇인지 몸소 알게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과정들이 훗날 소중한 자양분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보통의 관객이었던 내가 2편의 실습작품을 만들기까지 짧은 시간 속 엄청난 과정과 배움들이 존재했다.
나에게 배움을 주었던 첫 번째는, 강사님들이다. 연출/촬영/음향/편집 강의를 통해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해 처음 알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다. 공동작업을 하면서 나의 부족한 지식이 팀원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관련 지식이 없는 본인에게는 모든 용어가 낯설고 새로웠기에 더 잘 듣고 많이 받아 적으려고 노력했다. 공동작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지식을 알고 갈 수 있도록 알려주셨고, 참여회원들이 같은 강의를 듣고 같은 것들을 배우다 보니 작업을 진행하며 함께 복기하고 같은 배움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배움을 주었던 두 번째는, 13명의 동기들이다. 공동작업인 만큼 함께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영향이 꽤 컸다. 작업을 하면서 의견이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 답답해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그 과정들을 마냥 마음만 상한 채 흘려보내지 않았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동기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워왔고, 나에게 부족한 자질들을 반성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동기들이 아니었다면 실습작품을 완성할 수도, 내가 더 성장할 수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취향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른 14명이었지만, 영화를 배우고 싶다는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실습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결국은 사람이구나. 영화는 공동작업이고 공동작업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낌없이 지식을 나누어 주신 O선생님에게 많은 배움을 얻었다. '영화는 체력이다' '영화는 공동작업이다' '반면교사 타산지석' 등 주옥같은 말들로 느슨해진 우리들을 계속 움직이게 해주셨다. 몇십년간 경험으로 터득하신 지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마음 써주셔서 감사했고, O쌤이 알려주신 것들은 공동작업의 현장에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칼 같은 규칙 속에서 공동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심에 감사하고 203기에 오기까지 계속 워크숍을 유지하고 운영해 주신 O선생님의 노고에 존경을 표현하고 싶다.
3개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경험했고 벅찬 행복과 힘듦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어디 가서 겪지 못할 법한 일들을 직접 겪어보며 배우고 또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다. 공동작업이라 힘들었지만, 공동작업이라 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203기 독립영화워크숍을 공동작업으로 마치면서, 영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입문단계에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O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