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한준희 감독은 지옥 같은 공동작업을 입문 수료하였습니다.

inde1990@naver.… 1 1,789 2023.04.18 16:48

<모가디슈>의 류승완 감독처럼 <DP>의 한준희 감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독립영화워크숍을 참여하여 16mm 필름작업까지 수료하였습니다.


이후 본인의 영화적 적성을 확인하고 서울지역의 4년제 대학 영화과에 진학하였다가 1년 만에 자퇴하고 영화산업 현장의 막내 스탭으로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단편영화를 제작 연출하며 끊임없이 장편 시나리오에 응모하여 수많은 낙선과 좌절을 겪으면서 도전에 재 도전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물안 개구리로 안주하지 않기 위하여 같은 세대의 영화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여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그 노력의 결과가 <DP>인 것 같습니다.


지난 김포국제청소년영화제의 주최로 <청소년 영화인에서 DP 감독이 되기까지> 한준희 감독의 특강 http://naver.me/SKdcCG6A 으로 참여한 지난 독립영화워크숍 참여 회원들의 강의 평가 중에서 일부를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https://cafe.naver.com/inde1990 의 201기 강의 실습평가 게시판에서

<청소년 영화인에서 DP 감독이 되기까지> 한준희 감독의 특강

1. 오늘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주세요.

특강의 전체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활인, 직업인으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였던 것 같다. 시작에 앞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한 차례 지나간 뒤, 한준희 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사실 ‘재능’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주 덤덤한 말투였다.

누구나 처음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마도 그건 ‘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를 거치면서 분명 이러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 돌아봐야 할 시기가 올 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는 영원히 예술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 짊어져야 할 삶이 있는 우리 모두가 순교자가 될 수는 없다. 상업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아마도 제도와 산업 안에서 드디어 마땅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 나는 여전히 예술로서의 영화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내게 아주 오래 전부터 두렵게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직업’‘예술’인 혹은 ‘예술’‘노동’자. 이런 단어들을 접할 때면 나는 항상 마음이 복잡해진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또 없을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이 모순 속에 내 살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이런 단어들을 내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외로 한준희 감독은 강의 내내 독립영화워크숍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워크숍 과정을 거치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갈 어떤 태도를 배웠다고 말한다. 영화라는 것은 결국 ‘함께’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 나 또한 이러한 워크숍의 정신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직접 겪어보니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좋은 취지라는 것은 알지만, 정말이지 꽁꽁 묶인 듯이 답답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표현을 해내기에는 설득하고, 회유해야 할 워크숍 회원 친구들이 참으로 만만치가 않다. ‘직업’이라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 전체의 일부가 되어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마땅한 보수를 받는 일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는 중이다.

앞서 한준희 감독이 말한 ‘재능’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 어쩐지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얼핏 알 것 같기도 하다. 산업 안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직업’을 가진다는 것. 또 그것은 전체 안에서 일부가 된다는 것. “우리 지금 죽자살자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재능’ 타령이니?” 대충 이런 꾸짖음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도중, 여기서 문득 한 가지가 또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에 빠졌던 ‘그 영화’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빛나는 재능으로, 빛나는 영화를 만들던 그 양반들은 대체 뭘까? 아마 이 질문은 내가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며 계속해서 거듭해야 할 물음인 것 같다.

나는 한준희 감독에게 묻고 싶은 질문으로 이것을 적었다. ‘두번째 작 <뺑반> 이후의 삶은 어떠했는지?’ 사실 나는 이 질문이 그를 곤란하게 만들까 조금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의연한 태도로 답변을 해주었다.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그래도 일이 하나 끝났으니 다시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해야 했다고.” 그렇게 그는 워드 창에 또 한 번 S#1을 적었다고 한다. 한 ‘직업인’에게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밖에도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좌절은 어쩔 수 없이 그냥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말. 또 직장인이 아침에 회사 가기 싫은 것처럼 자신도 아침에 촬영 현장에 가기 싫다는 말 등. 곱O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참 많이 들었다. 예전에 어느 베테랑 감독이 촬영 현장이 너무 두려워 출근 도중에 구토를 하면서 끝내 도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영화라는 일이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았던 직장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멋대로 한 가지 희망만은 계속해서 품으리라 마음 먹는다. 출근과 근무 그리고 퇴근.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으리라.

-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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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일정 및 내용>

1) 2023년 5월 1일(월) 개강/ 독립영화워크숍 입문과정 3개월 / 2편의 단편영화 제작실습 완성 평가

- 4월 25일(화) 19시, 공개설명회 및 단체 면담에 의무적 참석(사전 신청) 후 선발 없이 24시간 결정

- 관련 https://cafe.naver.com/inde1990 에서 진행과정을 정독하고 사전에 참석 신청 및 등록

- 참여회비> 88만원 (기자재 대여 및 실습비, 단합수련회비 등 포함/ 제작실습비 1인당 20만원 지원)

2) 2023년 6월 8일(목) 개강/ 독립영화워크숍 중급과정 4개월 / 3편의 단편영화 제작실습 완성 평가

- 5월 30일(화) 19시, 공개설명회 및 단체 면담에 의무적 참석(사전 신청) 후 자료 제출에 의한 선발

- 관련 https://cafe.naver.com/indedirectors 에서 진행과정을 정독하고 사전에 참석 신청 및 등록

- 참여회비> 88만원 (기자재 대여 및 실습비, 단합수련회비 등 포함/ 제작실습비 1인당 50만원 지원)

주관> 독립영화협의회 교육분과 (문의 : 02-2237-0334)

후원> 문화법인 「목선재」 서울지역 영화교육 허브센터( http://inde1990.modoo.at) 영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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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inde1990@naver.… 2023.04.18 16:53
작년 이맘때 203기참여 회원이 현재 209기 참여회원에게 전달하는 조언 <4>

처음 독협 설명회에 갔을 때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어두컴컴해진 시간이었고, 먼 곳에 떨어진 고모 댁에 막 짐을 풀고 온 터라 피곤한 상태로 충무로에 도착했습니다. 대한극장 뒷골목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저는 솔직히 기대감보다는 긴장감이 앞섰습니다.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동안 이것에만 모든 걸 쏟아부어야할 것이라 말씀하셨고, 여러 고생이 있을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 시점부터 다 각오가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처를 옮겼음에도 신청을 하기 전까지 우려와 걱정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웠지만, 일단 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독립영화워크숍을 시작했습니다. 독협 생활을 시작하며 제가 얻어가고자 한 것은 딱 세 가지였습니다. 좋은 동기들, 단편 영화 촬영 경험, ‘영화를 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찍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입니다.

저는 과거 제가 연출을 맡아 단편을 찍은 적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을 때고, 무모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한 영화에 뜻이 있는 게 아닌, 고맙게도 절 도와주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함이 큰 탓에 저를 위해 모여준 친구들을 실망 시켰고, 결과적으로 여러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당시의 사건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절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니 독협의 공동작업에 끌린 건 필연적인 일이었습니다. 영화에 뜻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모두가 영화에 책임을 지고 함께 작업한다는 것은 제게 꼭 필요한 경험이었으니까요. 아침 10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이어진 몇 달간의 작업과 3시간 반가량의 통학은 절 체력적으로 몹시 지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전 독협에서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었고, 많은 걸 배웠으며, 앞으로도 쭉 서로를 도울 든든하고 소중한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외향적인 면모도 있지만, 본질은 내향인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전 항상 영화가 공동작업이라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건으로 인해 불안은 더욱 심화되었구요. 하지만 독협생활을 하면서 영화는 공동작업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독협을 다니며 ‘공동작업’이라는 의미의 범위를 훨씬 넓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과 동기들, 배우분들은 물론이고 저희가 발 닿은 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시던 많은 주민분이 우리의 영화를 도와주셨습니다.
자신도 한때 모델 일을 하셨다며 흔쾌히 주유소에서의 당일 촬영을 허락해주신 사장님, 공간을 내어주시고 기물파손이 일어났음에도 가벼운 변상으로 마무리해주신 서점 사장님, 회의를 하려 들릴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옥상에서의 촬영을 제안해주신 카페 사장님, 집을 촬영장소로 내어주시고 배려해주신 동기분의 부모님. 그 외에도 수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도움을 주시고, 영화의 일부가 되어주셨습니다. 마치 ‘록키’에서 조깅하는 씬을 찍을 때, 주인공이 받은 오렌지가 연출이 아닌 실제 상인분의 복서를 향한 응원이었던 것처럼요. 그런 멋진 인연과 뜻밖의 행운들이 모여 영화가 탄생한다는 걸 직접 경험했을 때, 그 모든 것이 더 근사하고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깨달음의 과정을 함께해준 동기들과의 작업은 저에게 ‘영화를 찍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준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어도 함께 있으면 그 고통이 덜어졌고, 마음이 엇나가는 순간이 와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서로를 아끼고 돕는 법을 배웠습니다. 동기들과 작업을 하는 건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독협에서 배운 그 어떠한 영화 지식보다도 값지고 특별한 건,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며 한 가지 일에 공을 들이는 법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의 힘을 합쳤을 때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더 멋진 영화가 탄생한다는 걸 깨닫자 공동작업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화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닌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이라는 게 저를 더 안심시켜줬고, 영화 작업이 훨씬 매혹적으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기들과 독협 수료가 끝난 이후에도 스터디를 꾸려 계속 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협 이후 어디로 가서 무얼 해야 할까 불안이 찾아와도 동기들이 있기에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나아간다는 감각은 영화를 하는 것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작업은 각각의 각진 돌들이 맞부딪쳐 둥글게 변하는 것을 보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지금 나와 인연이 이어진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삶이 교차한 그 순간을 최선을 다 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독협에서 목표한 것을 모두 얻었고, 지금은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올해 초까지 서울에 다시 올라가야 하나, 아니면 대전에 머물러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주거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경험이 부족했고 모아둔 돈도 없는 터라 생활비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영화 일을 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운 좋게 대전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감독님을 만나 대전영화협회에 들어갔고, 시나리오 개발 모임을 꾸준히 가지고 있으며, 4월 말부터는 감독님께서 맡으신 지원 사업의 보조로 채용됩니다. 대전에서 시민 영화 수업을 꾸리며 9월 말 개막을 목표로 영화제 운영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또한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영화 수업을 보충해 들으며, 6월에는 영화제 제출과 OTT 상영을 목표로 하는 여성 영화감독 양성 과정에 들어갑니다. 올해 아무리 못해도 5편 정도의 영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쁨이 큽니다.
‘대전에서 대체 뭘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으나, 독협시절로부터 얻은 용기와 ‘일단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돌진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행운과 인연,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독협에서의 생활은 꽤 열악합니다. 하지만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들었는데, 대전에서라고 못할 게 무엇이 있나 싶어 도전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사람은 모두가 다 다르기에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확신이, 저와 세대도 성별도 성격도 공유하는 기억도 모두 다른 이들과의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두렵지 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지내는 이번 한 해 동안에도 동기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이곳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꾸려갈 생각입니다.

어디에 머무르든 상관없습니다. 상황상 서울에 있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중요한 건 어디서 무얼하든,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고자 하면,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공동작업으로 인해 배웠습니다. 이걸 읽게 되실 모든 분이 꿈을 잃지 마시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리를 빛냈으면 좋겠습니다.

# 위의 글은 독립영화워크숍 입문과정의 관련 카페 https://cafe.naver.com/inde1990 의 공지 게시판에서 최근에 게시 된 것으로 가감 없이 퍼온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