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무덤을 보고

cultoon 0 2,576 2013.09.24 19:07
너무 늦게 후기를 올린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정극 형식의 연극을 보게 되었다. 말들의 무덤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국군,미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관한 연극이었다. 배우들의 실감나면서도 절제된 연기, 어두운 분위기, 중간 중간의 영상과 설명 등은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의 참상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공연에 대한 재미와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에 극의 줄거리를 들춰보지 않는다(무지와 무관심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공연을 보기 전까지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인지도 모르고 말들의 무덤에서 ‘말’이 타는 말로 알고 제주도에나 있을 법한 말무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공연은 주로 배우들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보고 들은 총살 장면에 대한 경험을 독백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뮤지컬은 아니지만 중간에 배우들의 합창도 있다. 뽕짝과 라틴 음악이 흐르고 이에 맞춰 춤도 춘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장면은 관객을 슬프면서도 유쾌하게 감상에 젖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독백이 주가 되는 연극은 극에 대한 이해도 어렵고 지루한 감이 있어서 부담스럽다. 어두운 분위기의 합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연극은 무엇보다 노근리 학살 등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등 다른 공연에서도 다루긴 했지만 당사자들의 심정과 공포를 리얼한 대사로 이렇게 전달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미군,국군 뿐 아니라 인민군의 만행도 같이 다뤄 균형을 맞춘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점과 배우들 간에 대사가 오가는 극 형식이 아니라 독백이라 갈수록 지루해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또한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그들이 남긴 말들이 어떻다는 것인지 계속 나타나는 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 점도 많았다.
내 나름대로는 죽은 자들이 말하고 싶은 말이 전달되지 못하고 안식처인 무덤으로 가지 못했는데 이런 공연을 함으로써 경험자의 입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여 한을 푸는 살풀이 같은 장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소 어렵고 지루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연극, 말들의 무덤, 한국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볼만 할 것 같다.
5점 만점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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