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꽃]

kyoung90 0 1,288 2017.07.28 18:58

[재꽃]

 

 

절망의 끝에서 시작해 희망의 시작으로 마무리하는 삼부작의 연출 의도에 대해 박석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잡을 수도, 안을 수도 없지만, 그 완전한 생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재꽃]은 박석영 감독 삼부작의 완결 편으로 [들꽃](2015)[스틸플라워](2016)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해야 심도 있는 의미로 다가오지만 [재꽃] 자체만으로도 좋은 내용에 영상미라고 할 수 있다.

 

삼부작의 주인공, 하담(정하담)

 

[들꽃]에서 그녀는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다 두 명의 언니에게 구출되지만, 거리를 전전한다. 매일 잘 곳을 찾기 위해 헤매지만 어디 한 곳 안전한 곳이 없다. 어른들의 보호라는 것은 그녀들을 이용해 돈 좀 벌어보려는 사학한 무리들이 주변에 그리 많은 지 낮 보다 밤에 악마가 돌아다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스틸 플라워] 하담은 갑자기 어느 세모녀의 생활고로 자살한 뉴스가 생각난다. 혼자 매서운 칼바람 속 겨울거리를 헤매며 일거리를 찾지만 아무도 그녀를 받아 주지 않는다. 힘들게 찾은 아르바이트 자리는 주인의 횡포에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쫓겨나고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 온 세상이 혼자인 그녀를 외면하는 밤거리 전등불빛 아래 탭댄스를 추며,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춤을 춘다.

[재꽃]

하담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로워 보인다. 화면의 모든 풍경과 배경은 영화제목에 맞지 않을 것 같지만 [들꽃] [스틸 플라워]을 봤으면 이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평안하고 가족 같은 곳에서 따스한 해 빛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그저 먹고 늘어지게 누운 들 고양이랄까? 그 들 고양이에게도 가족 같이 보이는 곳에서 돌보아야 할 동생도 생겼다. 해별(장해금)이란 이름의 11살 소녀다. 생전 본 적 없는 아빠를 찾겠다며 시골 마을을 찾아왔다. 해별이 아빠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처음엔 아니라고 했지만 자신의 아이라고 믿는 순간 갑자기 해별이가 꿈꿔왔던 아빠의 집을 만들겠다고 집 앞에 길도 새로 만들고 정원도 꾸미고 나중엔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며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고 서로에게 상처와 치유와 함께하는 이유를 던지고 있다.

[재꽃]은 실제로 존재하는 꽃이 아니다. 다 타버리고 재가 됐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꽃이라는 의미로 박석영 감독이 지었다고 한다. 감독이 보기에 지금의 소년과 소녀들은 재와 같은 존재다. 부모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행복만 추구하려 타인의 부모도 그 자녀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지켜주어야 할 국가와 사회마저도 벼랑끝 부모와 그 자녀들에게 조차도 무한경쟁 속에 몰아넣고 모른척한다.

해별이가 아버지를 만나러 시골 마을에 왔을 땐 가진 거라고는 달랑 캐리어 하나뿐. 아이들은 정글 같은 사회에서 [들꽃]처럼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혼자 힘으로 자라난다. “젊은 나이에 쇠도 먹는다는 어용으로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힘에 더욱 더 튼튼한 ‘Steel’ 같은 ‘Flower’으로 마치 오아시스를 찾아 꽃을 피우고 그 꽃잎이 하나하나 뜯겨져 나가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잡초가 아닌 꽃으로 남고 싶은 본능적 생명력과도 같다.

[들꽃][스틸 플라워]배경이 어둡고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가시넝쿨 속이었다면 [재꽃]의 배경은 초록빛으로 물든 풍요로움이, 마치 따스하고 사랑이 가득담긴 어머니의 품이 아닐까? 탁 트인 넓은 논과 밭 위로 푸르다 못해 시퍼런 하늘과 이 세상 끝에서 불어 온 바람, 저 끝 세상에서 온 남극 북극 바람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며 송사리와 소금쟁이가 서로 경주하듯 톡톡 뛰는 듯한 시냇가에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풀과 나무들, 하담과 해별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아빠이자 엄마와도 같은 포근함과 안락함을 제공한다. 이곳조차도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하여 하담과 해별은 정착하지도 못하고 다시 지나 온 [들꽃][스틸 플라워]거리로 나서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다.

하담은 [들꽃][스틸 플라워]를 모두 이겨낸 아름다운 하나의 꽃 한 송이로 성장했다. 무수한 꽃잎에 다시 피지 못할 것 같은 꽃을 다시 피우고 희망이라는 간절함 속에 다시 피웠다. 그리고 희망을 어른들이 아닌 본인이해별이라는 11살 아이에게 또 다른 꿈을 심는다. 해별은 일면식도 없는 하담을 보자마자 별 거리낌 없이 따르기 시작한다. 홀로 꽃이 된 하담과 다르게 해별에게는 마치 양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 하담 옆에 붙어 있다.

 

절망의 끝에서 시작해 희망의 시작으로 마무리하는 삼부작의 연출 의도에 대해 박석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잡을 수도, 안을 수도 없지만, 그 완전한 생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