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포러브 시사회 후기

dbwlsdlgo 0 1,436 2016.12.20 03:17


요즘 보는 영화마다 허탕을 치는듯 하나같이 집중이 되지 않았는데, 기대도 안했던 로맨스 영화에서 생각지도 못한 뒷통수를 거하게 맞았다. 물론 좋은 의미로. 대충 키 작은 남자와 키 큰 여자의 로맨스라고만 알고 갔던 시사회에서 내 인생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일단 당당하게 말하자면 굉장히 횡설수설할 예정이라 1번부터 두서없이 느낀점을 번호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내 인생에 길이 남을 영화. 눈물도 안 나올 정도로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2. '키 작은 남자'는 사실 우리가 편견을 덧씌우는 모든 대상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3. 평소 편견을 많이 갖고있는 사람일 수록, 그 편견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4. 대표적으로 지방의 대학들을 지잡대라 무시하던 학생이 수능을 조지고 지방대에 들어가게된 후 자기비하를 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자신이 욕한 정도가 클 수록 더 큰 자괴감에 빠지고, 이는 자살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5. 하지만 편견은 곧 시선이다. 즉,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6. '내 남자친구가 너무 작은데, 그가 다른사람의 시선에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곧 '키가 작은 걸 내 남자친구는 상처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 남자친구가 키가 작다는 사실을 나는 상처받을만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남자친구가 키가 작은 게 상처라고 생각한다.'가 된다.
7. 다시말해, 남들이 '저사람은 왜이렇게 키가 작아?'라고 말할까봐 걱정하게 되는 건, 내가 '그는 키가 작고, 이 사실이 약점처럼 느껴진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8. 결국 이 문제는 내 생각의 문제이다.
9. 만약 내가 그의 키를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면, 지나가는 행인이 '저 사람 왜이렇게 키가 작아? 난쟁이네, 난쟁이. 저 여자는 백설공주고 ㅋㅋ'라고 해도 '뭐야 저 병x은' 하고 넘길 수 있게 된다.
10. 하지만 만약 남자친구의 키 문제가 요즘 나의 주된 고민거리였다면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뭐? 당장 사과해!' 라고 발끈하게 된다.
11. 물론 난쟁이 발언을 한 사람이 굉장히 무례하고 무식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발언은 내 생각에 따라 상처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11.5. 4번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뒤집을 수 있는데, 평소 대학은 이름보다 유명한 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던가, 대학 공부보단 실무에 중점을 두었던 학생이라면 대학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그들에게 대학의 이름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저조한 성적에 우울하다면 대학에 관심이 없다는 그의 말은 거짓말이다. 이 경우에는 다시 열심히 공부하는 수 밖에..
12. 평범한 로맨스 영화의 탈을 쓴 이 영화 '업포러브'는 사실 편견에 대처하는 자세를 아주 친절하게 보여주는 교과서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3. 영화에 초 집중하며 보는동안 내 뇌리에 박힌 단어가 있다. 바로 '정서적 난쟁이들'.
14. 남자주인공 알렉상드르(이하 알. 너무 길다.)는 사실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람이다. 편견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고, 상처를 유머로 승화시킬 만큼의 세월을 겪은 남자다. 비록 키는 작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세상에서 제일 큰 거인으로 보인다. 실제 알을 연기한 남자배우 장 뒤자르댕(님)은 182cm라고 알고있다. 하지만 자연스런(?) cg로 영화속에서 137cm 정도의 남자를 연기하는데, 가끔 그가 2m를 훌쩍 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15. 이런 그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욕하고,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여주인공의 비서가 내뱉은 사이다 발언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는데, 스스로 덧씌운 알의 키에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고있는 여주인공 디안에게 그녀는

'모두가 다 똑같아야 만족해? 조금만 남들과 달라도 불안하지?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어렸을때부터 편견을 주입받고 자랐으니까. 콩알만한 심장과 콩알만한 마음을 가지고있는 너야말로 난쟁이야! 세상에는 정서적 난쟁이들이 너무 많아.'

하며 이 정서적 난쟁이들을 나치에 비유한다. ㅋㅋㅋㅋㅋ 세상엔 나치들이 너무 많아! 웃긴데 슬펐다.

16. 편견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한 처방전이 아닐까?
17. 어찌되었든 산전수전끝에 결의를 다진 여주인공 디안의 대사 또한 인상적이었다. 알과 함께 했던 스카이 다이빙(?)을 혼자 해내며, '떨어질 준비가 됐어! 나는 자유야!' 라고.
18. 편견을 만들어낸, 혹은 받아들인 게 '나'였듯, 그걸 벗어던질 유일한 방법도 내게 있다. 물론 엄청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19. 어쩌다보니 애매한 숫자에서 끝나 덧붙이자면, 영화 또한 사람이 의미 붙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내겐 굉장히 가치있었던 이 영화가 누구에겐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였을 수도.
20. 어쨌든 알은 정말 멋진 남자이며, 멋진 아버지이다. 그가 아들에게 들려주었던 일화도 굉장히 찡했다.
-사업 투자자를 얻지 못해 백수인 아들. 그에게 있는 것은 아이디어 뿐. 아, 나도 유명한 투자자(이름 까먹음)를 얻고 싶다. 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고, 이후 한참 후에 공항에서 알이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 농장에서 산 적이 있는데, 옆집 아저씨에겐 트랙터가 있었어. 나는 꿈에서 그 트랙터를 타는 꿈이 있었고. 아버지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옆집 아저씨에게 가서 말씀드리고 타보라고 하시더군.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어.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지. 옆집 아저씨에게 내가 말 해두었으니 가서 트랙터를 타 보렴. 하지만 옆집에 가서 들어보니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셨어. 그냥 돌아갈까 했지만 나는 아저씨에게 내 꿈에대해 이야기 했지. 그리곤 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트랙터를 타고 돌아왔어. 아버지는 용기를 낸 나를 무척 대견해 하셨다. 자, 저기에 유명한 투자자(이름이..)가 있다. 내가 네 사업안에 대해 미리 이야기 해두었어. 가서 얘기해보렴.'


아 역시. 알은 엄청 커다란 사람이다.

-마무리하며
극장에서 많은 여성분들이 '귀여워~'라는 말씀을 많이들 하셨다. 알이 여주인공과 걷는 뒷모습이 나올때 특히 산발적으로 '귀여워~!'라는 말들이 튀어나왔는데, 이것 또한 꽤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알은 그저 알일 뿐인데, 누구는 그를 난쟁이라 욕하고 누구는 귀엽다며 감탄한다. 그는 그저 그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에 따라 그는 이렇게 다르게 평가되지 않는가?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생각. 확고한 내 생각과 신념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바로 이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그나저나 포스터 속의 '때때로 큰 사랑은 아주 작은 곳에서 찾아온다.'라는 문구. 매우 적절한걸..?



http://jinydbwlsdl.blog.me/22089013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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