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2000을 돌파하며 축포를 쏜 것은 2007년 7월 24일이었다. “한국 증시의 새 역사”, “코스피 2000 시대 개막” 등 언론을 도배한 제목은 화려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한국 증시는 여전히 2000 시대다. 지난 6월 20일엔 코스피가 장중 2800을 터치했다. 속보가 쏟아졌다. 이마저 2년 5개월 만의 최고치라고 기뻐해야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3000 시대’를 열었던 2020~2021 코로나 시대를 제외하면 ‘박스피’ 세월이 근 15년이다. 2007년부터 2024년까지 17년의 코스피 수익률은 39.6%였다. 1년에 2.2%씩 오른 셈이다. 평균 물가상승률(3%대)보다 낮다. 저축은행에 넣어 뒀으면 주식에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았을 게다. 엄청난 ‘디스카운트’다.
그사이 세계 주요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보이며 한국 주식시장의 초라함을 더하게 했다.
1년 수익률, 일본 22.01%, 한국 8.16%
지난 1년의 기록은 상대적 박탈감을 더하게 한다. 상승률만 보면 대만 35.46%, 미국 30.72%, 인도 24.02%, 이탈리아 23.18%, 일본 22.01% 등이었다. 마이너스 성장 어쩌고 하며 휘청거리는 독일마저 15.6% 올랐다. 한국 주가상승률은 8.16%. 성장률 둔화로 먹구름이 낀 중국이 5.57% 하락했다는 것 정도로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세계 주요국 증시와 따로 노는 한국 시장. 나홀로 부진한 흐름에 기관투자가, 개인투자자들의 자금마저 국장을 떠나 미국, 일본 등으로 향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우리나라 주식은 살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개별기업의 주가도 저평가(?)되어 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우리나라 상장사의 10년 평균 PBR은 1.04배로 신흥국 평균(1.58배)보다도 낮다. 대만이 2.07배, 중국이 1.50배, 인도가 3.32배다. 주가는 미래를 반영한다면 지금은 그냥 기업들이 갖고 있는 자산 수준밖에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17년의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동학개미’들의 원성이 잦아지자 지난 2월엔 정부와 금융당국이 나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상장사의 낮은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한국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재까지 효과는 미미하다. 정부가 나선다고 17년의 디스카운트가 한 방에 해결될 리 만무하다. 실망스러운 소식도 흘러나왔다. 지난 6월 20일엔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발표하는 글로벌 주가지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도 또 좌초됐다.
MSCI가 다루는 시장은 크게 3곳으로 선진국시장(DM)과 신흥국시장(EM), 개발도상국 등이 포함된 프런티어시장(FM)인데 우리나라는 수년째 MSCI 선진시장 지수에 포함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편입이 무산됐다. 1992년 이머징 국가에 편입됐고 2009년 선진국 지수 편입 관찰대상국에 올랐다가 2014년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된 이후 10년째 신흥국시장 지위다.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던, GDP 규모 14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다.
이쯤 되면 순수한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한국 증시는 왜 박스피·박스닥 신세를 면치 못할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요인은 무엇인가. 한국 증시는 3000을 넘어 4000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현장에서 지적하는 걸림돌은 ‘지배구조’
<한경비즈니스>는 국내 자본시장 일선에 있는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 20인과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30인에게 ‘코스피 4000 시대를 위해 한국 자본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6월 24일부터 25일 양일간 실시한 50인의 설문조사에서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이익 증가’와 ‘주주 친화 정책’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 코스피 4000 시대는 요원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본시장 전문가 50인 중 과반이 넘는 26명(52%)은 한국 자본시장의 현재 점수를 묻는 질문에 ‘C 학점’ 이하를 줬다. 자본시장이 요구하는 자본효율성과 주주환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4개월 차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선 전문가 중 27명(54%)이 70점 미만의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한경비즈니스가 던진 첫째 질문은 자본시장의 현주소였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주요 증시와 비교해 한국 증시의 현재 점수를 묻는 질문에 20%가 50점 미만이라고 답했다. 50~60점 미만을 선택한 응답자는 18%, 60~70점 미만은 14%로 전체의 과반이 현재 증시 상황을 부정적으로 봤다. 70~80점 미만 응답자는 36%, 80~90점 미만 응답자는 12%다. 90점 이상에 표를 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특히 펀드매니저들이 시장을 더 냉담하게 분석했다. 리서치센터장의 경우 50점 미만 응답자가 10%에 불과했지만, 펀드매니저는 응답자의 26.7%가 한국 자본시장에 낙제점을 줬다.
‘자본시장의 성장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기업의 거버넌스(34.0%)’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한국 기업의 오너 중심적인 지배구조가 주주들의 자본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미다. 장애물 2위는 ‘주주친화적이지 않은 정책(20%)’이 꼽혔다. 자본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20%)가 동률을 얻었으며 시장 규칙의 갑작스러운 변경(12%), 산업 구조(4%) 등이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제시됐다.
정부가 지난 2월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은 아직까지는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응답자의 18%가 ‘50점 미만’을 줬으며 50~60점 미만(14%), 60~70점 미만(22%)으로 과반이 C 학점 이하에 손을 들었다. 한국 증시에 밸류업이 현재까지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44%가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반면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는 의견은 32%에 달했다. 24%는 오히려 부정적이라고 봤다.
긍정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이들은 ‘시도를 한 그 자체(41.7%)’에 좋은 점수를 줬다. 밸류업 정책이 ‘주주환원에 초점(38.9%)’을 맞춘 것도 긍정 요소로 작용했다. 반면 부정 영향을 미쳤다에 응답한 이들 중 절반은 ‘상법 개정 없이는 반쪽짜리 정책(50%)’이란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강제성 없는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에 초점(21.4%)을 맞춘 것도 실효성이 없단 점에서 아쉽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한국 밸류업이 본뜬 일본의 밸류업과도 비교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본의 밸류업은 장기 저성장과 고령화에 직면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 중 하나로, 일본 경제가 구조적으로 성장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쟁력 회복을 기반으로 한 기업가치 제고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양국 프로젝트의 가장 큰 차이는 상법 등 법체계(36%)다. 한국은 타 국가와 달리 상법상 기업의 이사가 ‘주주’를 위해야 한다는 충실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우리 상법과 체계가 가장 비슷하다는 일본의 ‘회사법’에도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넣지는 않았으나 최근 해석론이나 일본 경제산업성이 공표한 ‘공정한 M&A 지침’ 등을 통해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일본 경제산업성이 2019년 공표한 ‘공정한 M&A 지침’에는 ‘일반주주의 이익 확보’를 기본 원칙으로 둔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상충에서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을 별도로 담았다. 또한 일본 회사법 해석론에는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은 동일하며 주식회사의 영리법인 특성상 이사의 의무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의무로 연결된다’, ‘의무 위반 시 일본 회사법에 따라 이사는 주주에 대한 손해배상을 책임져야 한다’ 등을 명시함으로써 주주가 경영에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세제 혜택 등 당근 제도’에 대해서도 32%가 한·일 간 차이가 있다고 봤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의 ISA 계좌에 해당하는 ‘NISA 계좌’의 혜택을 확대했다. 해당 계좌의 비과세 기간을 무기한으로 늘리고 비과세 연간 납입 한도액을 120만 엔(약 1000만원)에서 360만 엔(약 3100만원)으로, 누적 한도를 600만 엔(약 5200만원)에서 1800만 엔(1억5700만원)으로 기존보다 3배 늘렸다. 이러한 세제혜택이 일본 국민들의 주식투자 관심 제고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한국도 최근 들어 정부의 세법·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해마다 7월 말이면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는데, 올해는 ISA 지원 확대 등 밸류업 정책 실효성을 높일 방안이 담길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건 일본과 한국의 기업 환경이다. 전문가들은 한·일간 자본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대주주(45%)’를 짚었다. 한국 기업은 오너십이 매우 강한 편이지만 일본 대기업 집단에는 오너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한국과 비슷한 기업 집단으로서의 재벌과 명확한 소유주가 존재했지만 패전 이후 일본에 들어온 미국 군정이 재벌을 해체해 버렸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본 대기업 집단은 오너가 아닌 기업 간의 상호지분 보유로 지배구조가 형성돼 있다. 일본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도 최대주주가 도요타자동직기와 도요타방직 등 도요타 그룹으로 통칭되는 관계사들이다.
기타 의견으로, 매우 장기간 지속된 ‘슈퍼엔저(2%)’를 꼽은 이도 있었다. 일본은 2012년 아베노믹스가 누른 엔저 버튼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역대급 수출 실적으로 기업 유보금을 넉넉하게 쌓을 수 있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23년 말 일본 기업 해외 법인의 내부유보금은 48조 엔(약 427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호리모토 요시오 일본금융청 국장은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전략 중 하나로 기업의 내부 유보금을 투자로 이끌어낸 것이 일본 증시 반등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우리는 국내 상장사의 이익 유보금만 1000조원에 달하지만 이를 투자로 이끌어낼 만한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하반기 코스피 평균 전망 ‘2627~2973’
결과적으로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는 아직 미흡하다. 하반기 정부의 세법·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며 밸류업 2차 랠리를 예상하는 시선도 있지만 50인의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하반기 코스피 밴드 전망으로 여전히 ‘박스피’를 제시한다. 이들의 평균 코스피 밴드는 2627~2973이다.
이 중 한 펀드매니저는 내년 1월 1일로 예정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과 미국 금리인하 지연으로 코스피 밴드가 2400까지 내려갈 가능성까지 우려했다. 상단도 2700으로 낮춰 잡았다. 하반기 코스피 저점이 지금보다 낮은 2700 이하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한 이들은 44%(22명)나 된다. 특히 금투세 시행으로 코스피 밴드의 평단을 낮춰 잡은 이들은 이 밖에도 여럿이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는 “자본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지속적으로 시장을 억누르고 있다”며 대표적으로 금투세를 제시했다.
반면 미국 금리인하와 미국 대선, 반도체 및 AI를 필두로 한 성장세 등 국내외 이슈로 코스피가 3000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38%(19명)나 달했다. 이 중 한 펀드매니저는 미국 대선 이벤트로 한국 증시도 탄력을 받아 코스피 밴드가 3300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현주소는 아직 미흡하지만 그럼에도 개선할 기회는 남았다. 밸류업도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 일본은 2013 아베노믹스 때부터 이어진 경제부흥정책이 10년 뒤인 오늘에 와서야 꽃을 피웠다. 한국은 이제 막 4개월 차다.
50인의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코스피 3000을 넘어 4000 시대’의 필수조건은 ‘세제 혜택 등의 주주친화 정책(40.0%)’과 ‘기업의 이익 증가(36.0%)’를 최우선으로 제시한다. 공매도 재개(12.0%)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4.0%) 등의 의견도 나왔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일관성 있는 주주친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리서치센터장은 “현재의 밸류업은 기업의 성장이 없는 환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기업의 이익 증가로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는다면 코스피 4000 시대도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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