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시사회 후기: 아무도 몰랐던 명량 이야기
novio2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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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0 19:45
누가 보면 역사 왜곡을 했다고 일갈했을지 모른다. 사실 그런 의심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배 10척으로 300여 척이 넘는 군대를 막았다는 사실 말이다. 어쩌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사는 지금, ‘명량해전’이 한국사 중 임진왜란인지 정유재란 때의 사건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냥 잘 나가던 뛰어난 영웅의 무용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에 이순신이란 장군이 그 주인공이고 머리가 무척 똑똑해서 지형을 잘 이용해서 이긴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국사 교과서 한 페이지도 아니고 대충 두 줄 넘지 않은 곳에서 쓰여진 역사적 사실, 그러면서 잊혀진 그런 사건. 그것이 조선 최고의 명승부이자 가장 위대한 해전뿐만 아니라 전쟁사로 기억될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다.
이런 자각은 결국 영화 ‘명량’ 덕분이다. 영화는 어느 영웅의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을 담을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다 아는 승전이지만 그 속에 담긴 한 인간의 고민과 당시 시대 상의 비극을 많지 않은 시간과 공간 속에 촘촘히 담으로 노력했고, 무척 인상적인 상징들과 언어로 잘 표현했다. 하지만 그러나 인간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와 투혼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영화의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한 전쟁신을 통해 제대로 보여줬다.
영화 속 이순신은 무척 외로웠다. 그리고 그랬을 것이다. 현재 최고의 배우로 평가 받는 ‘최민식’이란 배우의 공로로 인한 것이겠지만 세상을 살면서 미련할 만큼 충성한 군인에 대한 임금 선조의 냉혹한 처리는 몸서리칠 만큼 무서운 것이었고, 역사책 속 어디에도 적히지 않았던, 이순신이란 인간의 마음 어디에선가 서운함과 분노,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설사 이기더라도 살 수 없는 상황. 그는 일본군에 지면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만 이겨도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인생 최악의 외통수, 이것이 바로 명장 이순신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최선을 다한 한 인간에게 내려진 냉혹한 운명이었다.
충성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기는커녕 선조란 임금의 라이벌로서 이 세상에 없어졌으면 하는 대상이 되고 만 자신의 상황을 그가 몰랐을까? 자신을 추천했던 유성룡이 심지어 자신을 비판하는 편에 서있었다는 것은 이순신의 입장으로선 벼랑이 아닌 지옥 끝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으리라.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조선 내부적으로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은 상황, 삶의 가혹한 비극을 적은 수많은 소설이 많을지라도 정작 이순신이 처한 상황만큼의 비극을 담은 소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해서, 이순신에 대한 적개심으로 뭉친 일본 적선 330여 척을 단 10척의 배로 상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이건 누가 봐도 개죽음의 위기인 것이다.
영화가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 fiction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을 가릴 필요는 없다. 살다 보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이고 그에 따르는 감정은 자연스레 나오기 마련이다. 영화 ‘명량’은 비록 역사책에 없는 인간적 고뇌를 그 어떤 상황보다 현실적으로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가면을 쓴 한 인간의 인생사를 담은 고전인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으로서는 정말 믿기지 않은 인생의 선택을 했던 인간 이순신의 맨 얼굴을 그의 인생의 단 몇 컷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걸작이다.
인간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최민식이란 배우가 보여준 극적 리얼리티가 그런 이순신의 면모를 집요하도록 보여줬다. 그러면서 느끼는 인간적 안타까움과 고뇌를 지독하리만큼 느끼게 된다. 분노, 어쩌면 이순신이란 인간을 만나게 되면서 느끼는 자연스런 감정이리라.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이들을 위해 바보스런 모험을 하게 된다.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되는 평범한 한 인간의 생각이 속 좁게 느껴진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말이다. 그만큼 이순신은 엄청난 인간인 것이다.
결코 편치 않을 모든 순간에 단 10척으로 적선 330척을 상대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심지어 아군까지도 무서워 움츠린 상황에서 그의 무서운 결단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책임회피와 도망이 명량해전이 시작되면서 보였다. 그런 가운데 홀로 싸우며 분전하는 이순신과 그의 배는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모든 것이 반전됐다. 그의 탁월한 전략 역시 한 몫을 했겠지만 그의 몸을 사리지 않은 용기야말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숭고미라 할 수 있는 인간 이순신의 가치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앞으로 한국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영화감독들에겐 그다지 반가울 상황이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전쟁영화로 탄생된 것 같다. 앞으로 싫든 좋든 한국 전쟁사를 다룰 영화 감독들의 입장에선 영화 ‘명량’은 극복해야 할 숙제로 남게 될 작품이리라.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보탬이 되는 정도 수준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나온 것이 반갑고 고맙다. 감동은 무시무시한 피비릿내로 점철된 전생상황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숭고한 선택과 용기로부터 왔다. 무엇보다 인간 이순신에게 왜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다시 한 번 이순신의 가치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 영화, 꼭 천만이 아닌 이천만의 관객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고맙다.